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계 한국인 (문단 편집) === 일본계 북한인 === 8.15 광복 당시 한반도 북부지방은 일본제국이 실시한 병참기지화 정책의 결과로 공업도시화 되었기 때문에, 일본제국이 남긴 병기창이나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들의 공장들이 많이 남아있었다. 그러나 일본제국 정부는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선인 기술자들을 육성하지 않았기 때문에, 공장들의 기계와 설비를 다룰 수 있는 기술자들은 거의 모두가 일본인이었다. 소군정과 김일성은 이러한 산업발전에 필요했던 기술자들의 경우에는 처벌을 면제하거나 청산대상으로 기소하지 않고, 과거 직책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‘우대’하며 북한에 자발적으로 잔류를 유도했고, 이들이 북한인들과 동화되면서 일본계 북한인의 뿌리가 되었다. [[재일교포 북송]]으로 [[북한인]] 가운데도 일본계 혈통이 흐르는 사람이 있다. 재일교포 북송 당시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 국적자는 최소 6,839명으로 추정한다. 이들은 일본인 배우자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일본인 자녀들로 계급사회에다 순혈주의가 강한 북한에서 이들은 '''째포[* ~~[[잽]]이 아니고~~ 재일동포에서 따온 멸칭.]나 반쪽발이'''라 불리며 차별을 받으며 북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'''[[정치범수용소/북한|정치범수용소]]에 끌려가거나''' [[탈북]]하여 한국으로 향하거나 [[일본]]으로 돌아갔다. ~~ 오라고 할땐 언제고 오니까 차별 ~~ 2012년 12월 일본 [[교도통신]]은 [[김정은]]이 [[함경남도]] [[영광군(함경남도)|영광군]]에 거주하는 일본계 북한인 여성이 보낸 편지에 직접 친필 답장을 보낸 사실을 [[https://m.yna.co.kr/view/AKR20121230042300014|보도했다.]] 이름이 림경심(임경심)으로 알려진 이 여성은 일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으나,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가 남한 출신 의붓아버지와 재혼하면서 [[재일교포 북송]] 사업이 실시되자 1961년 9월 부모를 따라 북한으로 갔다고 전했다. 이 사실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는데, 해당 여성이 모국이었던 일본을 미,일반동, 인간증오의 극치사회(...)로 맹비난했기 때문. [[요도호 사건]]과 같이 일본인이 월북을 하거나 [[납북 일본인]]이 반강제로 [[북한 공민증]]을 받아 북한 공민이 되는 경우도 극소수나마 존재한다. 이들과 이들이 북한에서 낳은 자식 역시 북한 공민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사회적인 시선은 잘해봐야 [[복잡한 군중]] 취급이고, 주거의 자유 없이 당의 감시를 받으며 남파공작원 양성에 동원되거나 앞서 언급한 북송 재일교포의 배우자로 살아가는 데에 한정되어 사회적 활동의 폭은 매우 좁다. 북송 재일교포의 배우자 등 [[북한]]으로 귀화한 일본인이 탈북할 경우, 대한민국은 <[[북한이탈주민]]지원법>에 따라 북한 지역에 생활 기반을 두고 거주해왔으며 북한 '국적'이 인정되어 일본 등 타국 국적이 상실된 뒤 탈북해 대한민국에 입경한 사람에 한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고 한국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